
유럽 기차 여행기 — 파리에서 인터라켄까지, 창밖의 풍경을 담다
1. 파리의 아침, 리옹역에서 출발하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파리 리옹역(Gare de Lyon).
기차역의 높은 천장과 철제 구조물은 마치 오래된 소설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움직이고,
기차의 전광판에는 유럽 곳곳의 이름이 줄지어 떠 있다.
“INTERLAKEN OST”
그 한 줄의 행선지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여행이 진짜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플랫폼에 서니,
기차의 매끄러운 은빛 차체가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서 기차 문이 열리고,
한 발 내딛는 그 찰나 — 세상과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했다.
2. 창밖에 스치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
기차가 출발하고 30분쯤 지나면
도시의 건물들은 점점 낮아지고 초록빛 들판이 펼쳐진다.
유럽 기차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 ‘변화’에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의 흔적에서 자연의 리듬으로.
파리 근교의 마을들은 모두 postcard처럼 정갈했다.
붉은 지붕, 돌담길, 그리고 들판 위로 드문드문 보이는 풍차.
기차는 이 모든 풍경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과
밖으로 스치는 초원의 색이 겹쳐질 때마다
‘지금, 나는 정말 유럽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구나’라는 실감이 든다.
3. 기차 안의 일상 — 식당칸의 작은 행복
유럽 기차에는 대개 작은 식당칸이 있다.
아침 9시쯤, 커피 향이 은은히 흘러나오는 그곳은
여행자들 사이의 묘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따뜻한 라떼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들판을 바라보며 빵을 한입 베어무는 순간,
‘이보다 완벽한 아침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은편에는 독일인 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스위스로 하이킹을 간다며,
지도 위에 손가락으로 루트를 짚으며 웃고 있었다.
언어는 달라도 여행자의 설렘은 같았다.
기차 안은 국적을 넘어선 하나의 작은 ‘세계’처럼 느껴졌다.
4. 국경을 넘어 스위스로 — 풍경이 바뀌는 순간의 마법
TGV는 제네바를 향해 달리며 서서히 속도를 늦춘다.
창밖의 풍경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눈치챘다.
프랑스의 평원이 점점 사라지고, 산맥의 윤곽이 드러난다.
집들은 더 낮아지고, 지붕은 더 가파르며,
멀리서 반짝이는 눈 덮인 봉우리가 나타난다.
그 순간, 스위스 땅에 들어섰다는 걸 느낀다.
비행기로는 느낄 수 없는 ‘넘어감의 감정’ —
이것이 바로 기차 여행이 주는 특별한 감동이다.
제네바 역에서 잠시 멈춘 후,
기차는 다시 베른과 인터라켄으로 향한다.
기차는 더 느려지고,
창밖의 공기는 점점 더 푸르고 깨끗해진다.
5. 알프스를 향해 —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여정
스위스의 중부로 들어서면,
기차는 마치 산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터널을 지나고, 짧은 다리를 건너고,
눈 덮인 설산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기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창문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왼쪽에는 푸른 호수, 오른쪽에는 하얀 산맥.
햇살이 눈 위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장면은
사진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좌석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순간이 여행의 본질처럼 느껴진다.
‘이 순간을 잊지 않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창문에 이마를 대고 천천히 숨을 내쉰다.
6. 인터라켄 도착 — 두 호수 사이의 도시
오후 2시경, 인터라켄 오스트(Interlaken Ost) 역에 도착했다.
이름 그대로 ‘두 개의 호수 사이’에 위치한 도시답게,
역 앞부터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은 파랗고, 산맥은 가까웠으며,
사람들의 표정에는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호숫가로 나가본다.
툰 호수의 잔잔한 물결 위로 햇살이 반사되고,
멀리서 들려오는 카우벨 소리가
이 도시의 리듬을 완성한다.
파리의 화려한 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말이 진짜로 느껴진다.
7. 인터라켄의 하루 — 여유와 모험의 공존
인터라켄은 스위스 여행의 중심지로 불린다.
융프라우로 향하는 관문이자,
패러글라이딩, 하이킹, 유람선 등
자연과 가까운 액티비티가 가득한 도시다.
나는 아침 일찍 케이블카를 타고 하더쿨룸 전망대로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알프스의 설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발아래로 호수가 빛난다.
이 모든 광경이 마치 꿈같았다.
저녁에는 인터라켄 중심 거리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로스티와 맥주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창밖으로 붉게 물드는 노을이
여행의 여운을 깊게 남겼다.
8. 기차가 가르쳐준 여행의 의미
여행이 끝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행기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지만,
기차는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준다.
기차의 리듬, 창문에 비치는 나의 얼굴,
스쳐가는 풍경들 —
그 속에는 여행의 본질이 숨어 있다.
‘멈추지 않더라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의 아름다움.’
그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었다.
9. 유럽 기차 여행 꿀팁
- 유레일 패스(Eurail Pass) –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할 예정이라면 필수.
일정 기간 무제한 탑승이 가능하며, TGV와 ICE 같은 고속열차에도 적용된다. - 좌석 예약 필수 여부 확인 – 프랑스·이탈리아 구간은 반드시 사전 예약 필요.
- 기차 앱 활용 – “Trainline”, “SBB Mobile”로 시간표와 환승 정보 확인.
- 짐 최소화 – 통로가 좁기 때문에 24인치 이하 캐리어 추천.
- 창가 자리 선점 – 가장 중요한 팁!
풍경을 감상하려면 창가 자리를 미리 지정해야 한다. - 스낵과 음료 준비 – 식당칸도 좋지만, 작은 간식은 언제나 유용하다.
- 기차역 근처 숙소 선택 – 다음 일정 이동 시 훨씬 편하다.
10. 마무리 — 느림 속에서 발견한 진짜 유럽
파리에서 인터라켄까지의 7시간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유럽의 시간’을 통과한 경험이었다.
빨리 도착하기 위해 달리는 대신,
나는 그 여정의 모든 순간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도시와 도시를 잇지만,
그 사이에는 사람들의 삶, 자연의 리듬,
그리고 ‘여행자 자신’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 기차 여행은
아마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